마흔 넘어 출산 - 우리는 평균이다.
할일이 많아서 임신을 미뤘는데... 벌써 마흔...
응답도 하지 말아라. 출산과 육아...
여성들 사회적 성공에 우선순위… 35세 이상 초산 10년전의 2.5배 美선 “출산 미루지 말자” 캠페인
중견 인터넷회사에서 기획팀장을 맡고 있는 경력 15년의 홍수진(가명·41)씨는 작년 가을 첫아들을 낳았다. 서른셋에 결혼했으나 임신을 계속 미루다 마흔에 아이를 갖게 됐다.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일에만 매달렸어요. 결혼은 했지만 팀장 승진이 눈앞인데 덜컥 아이를 낳을 순 없었죠.” 팀장 자리에 오르고서야 임신을 생각하게 된 홍씨는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막상 임신하려니까 이제는 금방 아이가 생기질 않더군요. 자연 임신이 되긴 했지만 많이 초조했어요. 지금은 하나 더 낳고 싶은데….”
대학 교수인 박은정(가명·42)씨도 작년 초 마흔한 살에 교수가 되고 나서 임신해 작년 12월에 첫아들을 낳았다. 박씨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3년간 근무하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 유학 가서 박사학위 받고, 거기서 만난 남편과 서른셋에 결혼했어요. 시간강사 뛰고, 지방대에서 전임강사 생활을 하다 교수가 된 뒤에야 아이를 낳을 여유가 생겼어요.”
조선일보[이지혜기자 wise@chosun.com]
마흔 넘어 첫아기를 낳는 여성이 늘고 있다. 서울 차병원에서 40세가 넘어 첫아기를 낳은 산모는 2004년 166명, 2005년 215명, 2006년 237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도 마흔을 넘은 초산 산모의 비율이 1990년 0.1%에서 2000년 0.5%, 2005년엔 0.8%로 늘어났다. 전체 출산에서 4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3년 1.17%에서 2004년 1.22%, 2005년 1.31%로 높아졌다.
초산(初産) 때 나이가 35세 이상인 산모의 비율은 2005년에 6%를 넘었다. 10년 전에 비하면 2.5배 증가한 것이다. 초산 산모의 평균 나이는 1990년 25.9세에서 2000년 27.7세, 2005년 29.1세로 높아졌다. 관동대의대 제일병원 산부인과 양재혁 교수는 14일 “의학적으로 산모 나이가 35세를 넘으면 노산(老産)인데, 요즘은 35세 전후 출산을 ‘노산’이라 부르기도 무색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초산이 점점 늦어지는 이유는 ‘일이냐, 아이냐’의 선택에서 아이가 우선순위에서 밀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과 성공을 바라는 여성들은 사회에서 인정받을 때까지는 결혼이나 아이 낳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전문교육업체 이사인 김지연(가명·42)씨도 마흔한 살에 초산이었다. 김씨는 “일부러 결혼과 출산을 미룬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직장에서 안정을 찾기까지 너무 바빴다”고 말했다. “서른아홉에 결혼하고 아이 하나라도 낳았으니 다행이죠.” 김씨는 둘째는 꿈도 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늦은 나이의 출산이 산모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이다. 차병원 불임센터 조정현 교수는 “40세 이후에는 임신하기도 어렵지만 임신하더라도 기형아 출산이나 조산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임신 초기에 피검사, 16주에 양수검사 등을 통해 태아의 염색체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불임학회는 “아기는 무작정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출산을 미루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1970년 이후 30·40대의 초산은 4배나 늘어난 반면 20대 초산은 30% 이상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학회는 “30대가 되면 여성의 임신 능력은 매년 5∼10%씩 감소한다”며 “일과 아기를 모두 가질 수 있다고 과신하다가 40대에 의사를 찾아오면 이미 너무 늦다”고 경고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배은경 교수는 이 같은 추세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 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부분의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려고 애쓰는 현실이 된 이상 출산과 육아를 남편과 공평하게 분담하고, 출산이 곧 경력의 단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이 정책을 펴야 여성들의 출산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배 교수는 조언했다.